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미국은 트럼프를 제 45대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역대 가장 진흙탕 같은 혈전을 치른 두 후보의 대결은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었다.

선거일 직전까지도 미국 유수의 언론사들을 비롯해 미국 내 기라성 같은 전문가들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을 예고했다. 예측은 여지없이 빗나갔고 트럼프 후보가 압승을 거두었다.

영국의 EU(유럽연합) 탈퇴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던 참사를 교훈삼아 미국의 조사 전문기관들은 다양한 지표를 개발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의 표심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조사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의 표심과 지역별로 더 다양해진 투표 기준을 읽어내는 데 실패한 탓으로 보인다. 여론 조사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의 투표 참여 여부와 그들이 선호하는 후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더불어 과거에 비해 특정 개인이 지역 내 집단의 의견을 따르기보다는 다양한 소통채널을 통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각이 다원화되었다.

진보 성향이 강한 캘리포니아주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민주당 후보에게만 투표하지 않는다. 텍사스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공화당 후보에게만 투표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빅데이터나 현장 동향 조사 등을 통해 여론조사가 읽어내지 못하는 바닥 민심을 챙기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 바닥민심 읽어내지 못한 여론조사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트럼프 후보는 전체 유권자의 70%에 달하는 백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특히 백인 남성들을 단단하게 지지층으로 결집시켰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특성을 파악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는 가장 많은 유권자 집단인 백인들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한 국가로 만든다'(Make America Great Again)는 캐치프레이즈는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몰라도 선조 때부터 그 땅에서 살아온 농촌지역 백인 남성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충분했다.

오바마 대통령처럼 다른 국가와의 관계를 중시하고 이민자들에게 개방적인 힐러리에 비해 트럼프는 미국 동부와 중서부 그리고 플로리다 주의 백인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후보였다. 접전이 예상됐던 대부분의 경합 주를 싹쓸이하고, 백인들의 투표율이 높았던 점이 이를 방증한다.

트럼프 당선의 첫 번째 이유가 유권자 특히 백인 남성들의 투표 심리라면 다음 원인으로 경제 상황을 꼽게 된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경제 정책이 곧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지금 미국은 국가적으로는 경제 지표가 과히 나쁘지 않다. 실업율도 역대 정권과 비교할 때 낮은 편이고 물가 지표도 긍정적인 편이다.

그렇지만 지역 경제와 가계 경제를 생각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미시건, 오하이오, 위스콘신, 플로리다 그리고 펜실베이니아 주는 이번 선거를 결정짓는 핵심 경합 지역이었다. 플로리다 주를 제외하면 과거 철강, 자동차 등 제조업이 왕성했던 산업도시들이다.

지금은 쇠락한 지역으로 '러스트 벨트'(Rust Belt)라고도 불린다.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등은 과거 엄청난 호황을 누렸지만 지금은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공장은 해외로 떠나 버린지 오래다.

트럼프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 등을 통해 공장을 다시 짓고 새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귀가 솔깃한 이야기다.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불법 이주민들을 내쫓고 멕시코와의 국경에는 장벽을 세우겠다고 했다.

말하자면 미국 경제를 최우선시하고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트럼프노믹스'(Trumpnomic)가 보수적 미국 유권자들을 움직였다.

한편 트럼프 당선에는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이 적지않은 기여를 했다.

사실상 일등공신이나 다름없다. 트럼프의 각종 막말 기행, 여성 비하, 성희롱 등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지층들이 일제히 투표장으로 물려나오지 않은 데는 ‘이메일 스캔들’이 너무 큰 상처였다.

무려 3만개가 넘는 공적 이메일을 국무부 공식 이메일이 아니라 개인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은 사실은 피해 가기 힘든 악재였다.

그리고 선거일을 불과 일주일여 남겨두고 미국연방수사국(FBI)이 재수사를 시도한 점도 클린턴의 득표에 악영향을 끼쳤다.

한국의 ‘최순실 게이트’처럼 자신이 국무장관 시절 저지른 공적 활동에 있어서의 불감증이 결국 유력 후보의 뒷덜미를 잡았다.

힐러리는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많은 경합 주에게 우세했지만 정작 투표함을 열어보니 오바마 대통령의 지난 대선과 비슷한 정도의 결집력조차 나오지 않았다.

 

■ '한미 정상 간 관계' 걱정된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트럼프 시대는 열렸다. 당장 당선인 신분만으로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다.

불확실성이 가뜩이나 커진 세계 금융시장에 달러화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다. '미스터 불확실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식 시장과 외환 시장이 경계했던 인물인 만큼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감기 수준 훨씬 이상이다.

경제적 파급 현상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되는데 주한미군 주둔 비용 확대와 한미FTA 재협상이 현실화되면 한국 경제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는 상상을 초월한다.

경제 협정에 부정적인 트럼프 당선인의 특성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해 경제 돌파구를 만들려던 우리 정부의 구상도 어그러진다.

더 큰 우려는 온 국민적 갈등의 온상이 되고 있는 사드 배치에 대한 당선인의 생각을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 제재 강화를 우선시하는 한국 정부와 달리 트럼프 당선인은 핵 보유국에 가까운 수준으로 가고 있는 북한과의 대화 및 협상을 운운하고 있다.

한국과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트럼프 당선인은 신경질적으로 혐오감을 표시하고 있어 트럼프 시대의 한반도 정세는 더욱 벼랑 끝에 서게 된다.

이번 선거를 통해 미국이 반쪽으로 나누어지면서 사회 통합과 갈등 회복에 힘써야 하는 트럼프로서는 미국 국민들의 이익을 당연히 최우선시하게 된다. 때마침 상원과 하원도 공화당 차지가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은 한국 대통령의 리더십이 무너진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협력에 절대적 중요성을 가지는 한미 정상 간 관계다. 혼돈의 한반도 그리고 대한민국, 트럼프 시대에 대한 대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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