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실질' 심사, 과거 '형식적' 심사 관행 타파 위해 도입
영장실질심사 과정은 '기울어진 운동장... 변호인 무력감 느껴
고소·고발장, 신문조서 등 열람하고 참여하는 변호인 있을까
실질적 변론 위해 법에 규정된 서류라도 열람·등사 가능해야

홍성훈 법률사무소 다한 대표변호사
홍성훈 법률사무소 다한 대표변호사

 

필자는 필자가 소속된 지방변호사회 관할 지방법원의 논스톱국선변호사로서 구속영장실질심사(형사소송법상 명칭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참여하고 있다.

몇 개월 동안 다수의 영장실질심사에 참여해 피의자를 위해 변론한 결과 느낀 아쉬움이 있어 이의 개선을 요구하고자 한다.

구속영장 ‘실질심사제도는 과거 형식적심사 관행에 대한 반성적 의미에서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구속하는 시점부터 그 타당성 여부를 심사하기 위하여 1995년 형사소송법 제8차 개정 당시 처음 도입되었고, 이후 약 20년 간의 시행을 통해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필자와 같이 일선에서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임해 피의자의 방어권을 행사하고 있는 변호인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즉 피의자가 실질적으로 방어권을 행사하고 있는지 조금 의문이란 얘기다.

우선, 대부분의 경우 수사기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던 이들은 별 생각 없이 조사를 받다가 속칭 영장을 친다’(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부랴부랴 변호사를 찾아다니기 일쑤다.

결국 구속영장실질심사 단계에서 비로소 변호사가 변호인으로서 첫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거기까진 좋다. 아무렴 어떠랴. 기소 전에라도 선임했으니 향후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의 변소 취지에 부합하는 자료를 모아 기소가 될 때까지 충실히 변론자료를 취합하면 될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피의자가 구속이라도 되는 날에는 얘기가 좀 다르다. 피의자의 경우에는 구속이라도 되는 날에는 더 이상 부인하다가는 양형에까지 불이익이 있을까봐 방어 의지를 잃기도 한다.

실제로 필자가 변호했던 한 사업가 의뢰인은 “이미 한 번 판사가 심사를 해서 혐의가 있다고 인정했는데, 과연 향후 재판 절차에서 제 말이 판사에게 먹힐까요?”라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구속=유죄’라는 일반의 인식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물론 필자는 “구속영장실질심사는 구속 여부만을 심사하는 재판절차이지 피의자에 대한 범죄 혐의 유무죄를 최종적으로 판단한 것은 아니니, 재판에서 꼭 무고함을 밝히자고 달랬다. 다행히 그 피의자는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석방되었다.

이렇듯 구속영장 발부에 신중하자고 도입한 제도의 재판이 지나치게 신중해진 탓이랄까(?), 사실상 예심과 같이 진행되는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변호인은 무력감을 느낀다.

우리 형사소송규칙 제96조의 21은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참여할 변호인은 구속영장청구서 및 그에 첨부된 고소·고발장, 피의자의 진술을 기재한 서류(즉 피의자 신문조서 등)와 피의자가 제출한 서류를 열람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필자가 장담하건대, 구속영장청구서 외에 위 조항에 열거된 서류를 열람하고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참여하는 변호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무상 법원에 열람을 청구해 봐야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기각될 여지가 많고, 실제로 청구할 시간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구속영장청구서 달랑 몇 장과 구속영장실질심사 20~30분 전이나 직전에 도착한 피의자와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하는 접견, 그 외 피의자의 가족과의 면담을 통해 확보한 기타 양형 사유에 해당하는 서류 몇 가지 정도 들고 재판정에 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휘슬이 울리고, 우리(피의자와 변호인)는 공을 차기 시작한다.

변호인은 불구속 수사 원칙, 불구속 재판 원칙이란 말을 시작으로 피의자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없으며 도주의 우려 또한 없다고 주장하지만 적게는 수십 페이지에서 많게는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수사기록을 검토하고 들어온 판사에게 구속영장청구서 외 몇 가지 서류를 기초로 피의자와의 몇 분에 불과한 면접을 바탕으로 하는 변호인의 변론이 실체적이고 실질적으로 가 닿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최소한 법에 규정된 내용의 서류라도 구속영장청구서와 함께 필요적으로 열람 또는 등사가 가능하도록 하여 실질적 무기대등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 검찰은 법원의 기각 사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이제는 필자도 좀 묻고 싶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언제쯤 수평이 될 수 있는지를. / 홍성훈<법률사무소 다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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