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 신입 간호사 자살 사건으로 '태움 문화' 다시 수면 위로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 간호사 집단 괴롭힘 가리키는 은어
인과관계 입증 못하면 처벌·배상 어려워... 병원 책임 인정도 제한적
"OECD 3분의 1 수준... 간호사 인력 확충 등 근본적 대책 있어야"

[앵커]

신입 간호사가 병원 내 이른바 ‘태움’ 문화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관련 청원이 쇄도하고 있고, 경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병원 내 고질적 태움 문화, 법적인 대응 방안이나 처벌은 어떻게 되는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는지. 

신새아 기자의 심층 리포트입니다. 

[리포트] 

오늘(20일) 오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입니다.

병원 내 선후배 간호사 간 과도한 위계질서와 가혹한 교육을 뜻하는 ‘태움’ 관련 청원이 수십 건 올라와 있습니다.

‘태움’은 ‘재가 될 때가지 태운다’는 표현에서 유래한 일종의 간호사 은어입니다.

글자 그대로 완전히 재가 되어 소진될 때까지 신입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방식을 말합니다.

선배 간호사들이 ‘교육’을 빙자해 이 ‘태움’ 이라는 행위를 했을 때 법적인 처벌이나 쟁점은 어떻게 될까요.  

일단 태움 행위 양태에 따라 형사적으로는 모욕이나 협박, 명예훼손이 적용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형사처벌까지 혐의 입증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집단따돌림이나 ‘임신 순번제’ 강요의 경우도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잘 안 가지만, 이를 법적으로 제재할 근거는 사실상 없습니다.  

[신유진 변호사/ 법률사무소 엘엔씨]
“(범죄) 행위 태양에 맞게 행위가 구체적으로 있어야 해요. 무엇보다 좀 더 모든 것을 어떤 잘못이 있다고 모든 것이 형사처벌로 다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에요...”  

‘가해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등 민사적으로 대응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태움’과 ‘정신적 고통’ 피해 사이 인과관계 입증이 관건입니다.

[신유진 변호사/ 법률사무소 엘엔씨]
“사실은 개개인한테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상당히 어려워요. 만약에 개인적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한다면 내가 모든 인관관계를 증명해야...“ 

관리책임을 물어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게 병원 책임이 인정된다 해도 그 범위는 제한적입니다.

실제 관련 판례도 있습니다.

지난 2005년 광주 한 대학병원 수술실에 배속받은 신입 간호사 전모씨가 ‘태움’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입니다.

전씨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고, 동료 간호사들도 전씨가 병원 화장실에서 우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지만 선배 간호사들도 병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법원은 병원 과실을 20%만 인정했습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전씨의 기질이 이 사건의 한 원인으로 전씨 과실이 80%, 병원 과실은 20%로 제한한다”는 게 법원 판단입니다.
 
[신유진 변호사/ 법률사무소 엘엔씨]
“이렇게 자살을 하는 경우에는 인과관계가 중요해요. 인과관계를 인정을 받으려면 이 사람이 다른 스트레스 원인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이것이 가장 큰 원인이고 이것으로 인해서 정신적으로 자살까지...” 

의료 전문가들은 병원 ‘태움’ 문화를 간호사들의 고질적이고도 열악한 근무환경을 원인으로 꼽습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관련 글들이 여러 건 올라와 있습니다.

"태움은 몇몇 인성 나쁜 간호사들 때문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 때문이다“,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화장실 한 번 가지 못하는 간호사에게 단지 ‘친절하라’고 강요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입니다.

우선 최소한의 간호사 인력 확충부터 해 달라는 겁니다.

실제 OECD 조사에 따르면 간호사 1명당 담당 환자 수는 미국 5명, 일본·유럽은 7~8명 선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5명으로 일본·유럽의 2배, 미국의 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한간호사협회 관계자]
“아무래도 병원 측에서 인원을 좀 많이 뽑진 않거든요. 그래서 간호사 업무강도가 다른 OECD국에 비해 굉장히 높은 수준입니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만큼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아직도 간호사 세계에선 ‘불문율’이나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는 태움 문화. 

법적인 처벌이 아니라 간호사 교육 방식과 인력 확충 등 근본적 개선책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법률방송 신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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