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송,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무기대등 원칙에 반해사회적 약자 법률 구조가 목표 "소송보다 조정이나 중재"정부, 시민단체, 환자, 병원 모두 의료사고에 관심 가져야

"환자와 의사는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갈등 축입니다. 마치 노사간의 갈등과 같아요. 의료소송은 일반적인 소송과 달리 이러한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죠."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변)' 제5대 대표로 활동 중인 이인재(43·사법연수원 31기) 법무법인 우성 변호사는 의료소송의 가치를 이렇게 평가했다. 

올해로 창립 9년째를 맞는 의변은 국내 '전문 변호사 단체' 1호다. 2008년 발족 이후 보건·의료분야 10대 판례 선정을 비롯, 법원·검찰 간담회, 의료전문가 초빙 강의, 일본 변호사단체 국제 교류 등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고민해왔다.

이 변호사는 의변이 강조하는 가치에 대해 "보건·의료 분야에서 의료 인권을 옹호하고 의료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전문가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15년간 줄곧 의료소송이라는 한 길만 걸어온 이인재 변호사는 우연한 기회에 의료소송 전문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이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에 있을 당시 아내가 유산을 하는 등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당시 아내의 산부인과 담당 의사는 이 변호사가 사법연수원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나라에 는 의료법 전문가가 없으니 의료법 전문가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이 말이 이 변호사의 진로에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이후 이 변호사는 연수원 2년차일 당시 대한의사협회에 전문기관 연수를 신청했다. 전문기관 연수를 하면서 서울대병원, 녹십자에 이어 신현호 변호사를 만나게 됐는데, 이 과정들은 이 변호사가 의료소송과 인연을 맺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 변호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의료소송으로 2008년에 있었던 종아리 근육 퇴축술 부작용' 관련 소송을 꼽았다. 수백명의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적 콤플렉스인 울퉁불퉁한 종아리 라인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 종아리 근육을 퇴축시키는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열로 근육과 신경을 죽이다보니 통증을 호소한 이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수술 후 종아리가 함몰되거나 양쪽 다리가 비대칭이 되고, 까치발을 하지 않고서는 걸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됐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술 이후 보상기전으로 근육이 과다하게 형성돼 강한 알통이 다리에 형성된 이들도 있었다. 

이 변호사는 성형외과 등 미용 분야의 의료사고는 피해액이 적거나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커서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찾아온 피해자들에게 개별 소송보다 공동 대응을 권했다. 

결국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모인 피해자 90명 중 27명은 힘을 모아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병원 측이 환자들에게 부작용의 위험을 설명하지 않았고, 시술 과정에서 과실이 있었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변호사는 "대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수술방이나 중환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고, 어떠한 연유로 환자가 사망에 이르게 됐는지 환자가 제대로 알 수 있는 길이 없다"며 "일반적인 민사소송은 대등한 당사자들간의 싸움인 것에 반해 의료소송은 전문가인 의사와 비전문가인 환자 사이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변호사는 환자와 의사의 싸움은 사실상 무기대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전문변호사들을 비롯해 사회에서 전문가로 자리잡고 있는 이들이 억울한 일을 겪지 않도록 진실을 밝혀줄 사회적 책무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이 변호사는 의사·약사·수의사 출신 혹은 의료 소송을 오래한 변호사 등 다양한 이들로 구성된 의변을 통해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에 대해 법률 구조를 하는 것이 자신과 의변의 가장 큰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전문변호사로서 끊임없이 자신의 역할이 대해 고민 중이다.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변)' 제5대 대표 이인재 변호사(43·사법연수원 31기)는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환자들과 의사들이 다른 상황과 위치에 있음을 인식하고, 보다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junho-choi@lawtv.kr

'의변'은 어떤 모임인가

보건·의료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변호사들이 매월 한달에 한 번씩 모여서 공부도 하고 전문가 초빙 강의도 듣고 간담회도 하는 단체다. 현재 190여명 이상의 전국적 회원들이 가입돼 있다. 

의변 회장 취임과 동시에 의변의 의료문제변호인단, 법률구조사업, 협력의제도, 의약품부작용 바로알기본부 등 의변의 4대 사업을 발표했다.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은?

소송 구조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률 구조를 하고, 이를 통해 의변의 대외적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그 후 과거 메르스 사건이나 집단 감염 관련 사건처럼 국민적 건강권과 관련된 공익적 사건이 생겼을 때 의료문제변호인단을 구성해서 의변의 이름으로, 의료문제 변호인의 이름으로 특정 사건을 변론을 해볼 생각이다. 이것은 장기적 플랜을 갖고 해야 하는 부분이다.  

협력의제도는 저희 힘만으로는 할 수 없다. 의사 측의 협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계속 발굴 중이다. 협력의가 발굴되면 의료소송을 하고 싶지만 변호사 선임 비용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문 소견서를 작성해줄 수 있게 된다. 

의약품 부작용 바로알기 운동본부는 지금도 계속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사업들은 모두 의료 인권과 의료 민주주의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 생각한다. 당장은 지침이나 이런 걸 만드는 단계지 아직 실천적으로 나갈 단계는 아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임기 중에 제도화하는 게 목표다.  

이번 사업들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측면이 높아보이는데.

의료 소송은 단순하게 양 당사자가 대립하는 문제가 아니다. 노사 갈등처럼 환자 측과 의사측의 갈등이 굉장히 심하다. 그래서 법정에서 무작정 싸우는 것보다 어느 정도 분쟁을 종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특히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병원 측은 진실을 숨기고 은폐하려 한다. 우리는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좀 더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의료사고 발생은 흔한가.

통계를 보면 한해 동안 법원에 소송이 걸리는 게 1천건, 중재원에서 진행하는 게 1천건, 소비자원 1천건, 보험회사 1천건 등 대충 구체적인 분쟁이 되어 사례화가 되는 건 4천건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 상담을 하고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사건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 분쟁 실태는 어떠한가.

의료사고가 났다고 해서 전부 의료분쟁이 나는 건 아니다. 자체적으로 합의해서 해결하면 의료분쟁까지 가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 환자 입장에서는 과연 이 사고가 의사가 잘못해서 난 것인지, 불가항력적으로 난 것인지 판단을 잘 못하기 때문에 의심을 하게 돼 분쟁으로 가게 된다. 분쟁으로 가게 되면 1인 시위도 하고, 때로는 찾아가서 멱살도 잡고 폭력도 행사하게 되면서 민·형사 고소로 가는 것이다. 

의료 사고를 당했을 때 환자가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나.

환자 측은 가장 먼저 신속, 정확하게 진료기록을 확보해야 한다. 신속하다는 건 사고 이후 즉시를 의미한다. 시간을 두면 자료를 갖고 있는 측에서 정리를 하게 된다. 정확하다는 건 빠짐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어떤 중요한 진료기록이 빠진 후 진료기록을 복사하게 되면 병원 측이 그 부분에 대해 정리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료기록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이후 시민 단체든 전문가를 찾아가서 상담을 받으면 된다.

의료사고와 관련해 정부가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보건복지부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둬서 사후 구제를 해주고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신고가 들어오면 조사를 해서 조정을 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정부는 사후 구제 뿐만 아니라 더 앞장서서 예방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의료사고는 피해 구제와 예방이라는 투 트랙이 있다. 지금은 주로 피해 구제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만 예방을 할 수 있으면 예방에 포커스를 두는 게 훨씬 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정부는 예방에 포커스를 둬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만 의료사고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정부, 시민단체, 환자들, 병원 관계자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예방도 되고 신속한 피해 구제도 되는 거다. 또 소송보다는 조정이나 중재가 바람직한 해결 방법을 낳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구상하고 있는 사업이 있나. 

의변 차원에서는 의료인권이나 의료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협력의제도'를 보다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고 싶다. 또 현재는 형사 고소를 해야만 부검이 가능한데, 형사 고소 없이도 부검을 할 수 있는 '의료부검제도'가 도입됐으면 좋겠다. 지금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경찰청 소속이기 때문에 부검을 하기 위해서는 형사 고소가 선재되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의사가 피고소인이 되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사망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질 때까지 가치중립적인 상황에서 부검이 가능하도록 하는 의료부검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개인적인 차원으로는 현재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 법률구조공단이 있지만 소송 구조를 체계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또 중재원에서 모든 사건을 다 맡을 수 없기도 하다. 한국소비자원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내겐 너무나도 어려운 숙제와도 같다.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