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들,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 갖고 판단할 것... 양심과 경륜 존중해야" "탄핵 사태는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 대통령의 '힘을 빼는' 방향 개헌 이뤄내야"

헌법재판소가 지난 22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첫 재판을 열고 준비절차기일을 진행했다. 탄핵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지난 9일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를 훌쩍 넘겨 찬성 234, 반대 56, 기권 2, 무효 7표로 가결됐다.

탄핵은 국민이 직접 뽑은 국가원수를 헌법에 따라 심판하는 법적 장치다. 대한민국 국회는 지난 2004년 3월 12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이후 두번째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고, 국민의 주권을 지키는 헌법 정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 탄핵소추로 국민의 헌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를 직접 찾아가 탄핵심판이 열리는 현장을 둘러보는 국민들도 늘었다.

이같은 시점에 차기 한국헌법학회장으로 선출된 고문현(56) 숭실대 교수를 만났다. 대학 연구실에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쌓여있는 헌법 관련 서적과 자료가 그의 열정을 느끼게 했다.

 

한국헌법학회와 서울대 법학연구소 공동 주최로 23일 서울대 근대법학교육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탄핵심판의 헌법적 쟁점' 주제 학술대회에 참석한 고문현 한국헌법학회 차기 회장.

고 교수는 박 대통령의 탄핵심판에는 증거조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각이나 인용 여부는 재판관들이 심리할 일이기는 하지만 특검을 통한 구체적인 물증 제시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며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이나 정호성 전 비서관의 녹음파일같은 증거가 있는 만큼 이를 철저히 분석해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정농단 사태의 원인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꼽았다. 고 교수는 “이런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 안에 있어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크다”며 “개헌은 국가 백년대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인 만큼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개헌을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 교수는 또 “대통령이 탄핵소추되는 사태는 국가적으로는 불행하지만 국민에 대한 헌법 교육의 장으로서는 최고의 기회”라며 “헌법은 국민의 권리를 담고 있는 것인 만큼 스스로 배우고 익혀서 헌법이 자기 권리를 지켜주는 수호천사라는 인식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고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차기 한국헌법학회 회장으로 당선됐다. 소감은.

- 국가적으로 '헌법'이 핵심 의제가 된 상황에서 회장으로 선출된 데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학회를 중심으로 현안 과제인 탄핵과 개헌을 지혜롭게 잘 해결해 국가 백년대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헌법학회는 차기 회장을 미리 선출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 법치주의의 핵심이 예측가능성이다. 회장을 미리 뽑아 다음해를 예측해 계획도 하고, 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관행적으로 차기 회장을 미리 선발하고 있다.

▲내년 12월부터 임기가 시작되는데, 그동안은 어떤 일을 하게 되나.

- 현 회장이 하는 업무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향후 어떤 식으로 사업을 진행해 나갈지에 대한 제안서 작성 등의 업무를 하게 된다.

▲한국헌법학회를 소개한다면.

- 헌법과 헌법학 관련 이슈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중요 현안에 대해 학문적 자문을 하기도 한다. 인력 풀이 600명 정도 되는 만큼 이들을 적재적소에 연결시켜서 회원들의 능력을 함양하는 역할 역시 수행하고 있다.

▲한국헌법학회가 주로 하는 사업은 어떤 것이 있나.

- 학술세미나가 주를 이룬다. 여러 기관에 필요한 과제에 대한 검토를 하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헌법의 발전을 위해 회원들과 함께 노력해 나가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회장으로서 포부가 있다면.

- 첫번째는 개헌이다. 차기 대통령이 개헌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로 당선될 수 있다고 본다. 학회 차원에서 헌법 개정이 바람직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방향과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한다. 국가적 이슈에 대해 최대한 학회의 역할을 하겠다.

두번째는 2018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헌법학회를 대비하는 것이다. 4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헌법학술축제다. 주최 측과 연대해서 이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려 한다. 세계 각국에서 3천명 이상이 참석하는데 일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국가에서 온 학자와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AAA컨퍼런스를 조직해서 세미나를 개최하려 한다. 탄핵심판이 어떤 결론을 내릴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가 대통령이 실망스러워도 평화롭게 해결하고 있지 않나. 이런 한국의 성숙한 법치주의, 입헌주의 의식을 그런 나라에 수출하는 것이 목표다.

대한민국은 압축성장의 경제기적을 이뤘듯이 입헌주의 기적을 이룬 나라기도 하다. 2년 전 국제세미나에서 중국 칭화대 교수가 한국에 오게 된 소감을 말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같은 문화권인데 어떻게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지, 감명 받았다고 얘기하더라. 열린 마음으로 배우려는 모습을 보고 '법치 인프라'를 전수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성숙하고 발전된 입헌주의 수준과 법치주의 수준을 다른 나라에 전하는 민간외교로서의 역할이라고 본다.

▲탄핵소추안 가결은 예상했던 결과인가.

- 예상했다. 안종범 전 수석의 증거만 봐도 객관적 데이터인 물증이 있는 셈 아닌가. (안 전 수석의 수첩이) 대통령 지시사항을 적은 것이라고 밝혀졌는데, 그만큼 명확한 증거가 어디 있겠나.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만 볼 때 탄핵소추안 가결은 국민적인 여론에 따라 당연한 결과였다고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헌법재판소 연구관으로 재직했다. 어떤 일을 주로 담당했나.

- 실무의 핵심이나 이론에 대한 연구를 했다. 러시아 같은 해외 탄핵 사례를 보기도 하고 비교법적인 분석을 했다. 이번에는 직속 연구관과 공동연구팀 중 상당히 많은 분들이 투입돼 집중적으로 연구하지 않을까 싶다.

▲헌재는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판단하게 될까.

- 무엇보다 각 쟁점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증거조사를 통한 사실관계 입증이 중점을 이룰 것이다.

▲인용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 지금까지 제기된 것들이 사실이라면 대통령 지위에서 내려와야 할 일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국민들 마음이야 알지만 법대로 해야 하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쳐 결정돼야 할 일이라고 본다. 대통령이 책임질 만한 일이 있으면 책임을 물어서 탄핵을 인용하면 된다.

▲헌법재판관 임기 때문에도 말이 많다. 총리가 권한대행 상태에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다.

- 관점에 따라 견해가 나눠지고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현 총리는 현상유지·관리형으로 봐야 한다.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지만 대통령의 지위보다는 총리로 현상을 유지해 있는 것을 잘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결국 헌법재판관을 임명해선 안된다는게 기본적 입장이다. 만약 (재판관이) 5명 정도가 빠지면 (임명을) 해야 하겠지만 현상유지 차원에서 새로 임명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그렇게 되면 궐위가 생긴 상태로 심리가 진행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 그런 걱정을 할 수는 있겠지만 재판관도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지니기 때문에 예단하기 어렵다. 미리 예단해서 하는 것은 여론재판이 될 수도 있다. 재판관의 양심과 경륜을 존중해야 한다.

▲탄핵심판 기간은 어느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나.

- 철저한 증거조사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결국 심리 전체를 좌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한철 소장의 임기 만료일인 1월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정미 재판관 임기 만료일인 3월 14일 이전에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헌재의 의지와 달리 증인들의 협조도 필요하지 않나.

- 그렇다. 국정조사할 때 증인들이 출석도 안하고 했던 것이 이번에도 반복될까봐 걱정되기는 한다. 증인들에 대한 관리를 잘해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조사한 뒤 그 자료를 기초로 심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증거가 명확하지 않고,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 할 정도의 중대한 범죄로 볼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 증거는 완벽하게 구성은 못해도 상당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본다. '중대한 범죄'로 보는 관점은 다르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도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하면 중대한 것'이라고 여겼는데 '대통령이 궐위될 정도로 중대해야 한다'는 헌재의 결정이 있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직접 안 전 수석을 통해 기업인들을 만나게 하면서 최순실씨와 정유라씨 등을 지원했다. 본인은 순수한 뜻일지도 모르겠지만 국익을 위해 했다고 하긴 어려운 일 아닌가. 미필적 고의 비슷하게 입증만 되면 중대한 범죄로 봐야 한다. 최씨와 박 대통령은 평생을 도와준 사이인데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은 좋지만 청와대에서 공조직을 가동해 써야 하는 부분에 아무 직위도 없는 사람을 끌어들여 문건을 유출하고 그 사람에게 보고하는 것은 공과 사를 혼동한 중요한 문제다.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든 행위를 3년이 넘게 했다는 얘긴데, 이것보다 중대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특검 수사가 중요하겠다.

- 기각이나 인용 여부는 헌법재판관들이 심리할 일이지만 특검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인 증거가 나와야 한다.

▲대통령 탄핵 사태는 이번이 두번째다. 헌법학자로서 이런 상황에 대한 생각은.

-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두 번이나 온 것은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세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다음 대통령이 나오더라도 현재의 헌법이 유지되는 한 이런 현상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결국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좋은 기회라고 본다. 

▲그렇다면 의원내각제 개헌에 대한 생각은.

- 의원내각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복수정당이 있어야 하고 직업공무원제가 확립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정당이 제대로 돼 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나라는 정강정책 중심의 정책정당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인의정당이지 않나. 정당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다.

또 소신에 따라 이야기할 수 있는 직업공무원제가 확립돼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원내각제를 할 여건이 안돼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북한 대치 상황에서 의원내각제를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고 본다. 일단은 대통령의 힘을 빼는 쪽으로 가는 것이 맞다.

▲오스트리아식 의원내각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 이원정부제 역시 전제조건으로 정당이 확립돼 있어야 하고 정당 사이 대화와 타협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한 같은 정당에서 대통령이 나오고 총리가 되는 게 협조가 좋은데, 만약 양쪽이 다르면 사사건건 부딪힐 것이다. 결국 국정의 발목을 잡게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해외 파병 같은 경우 외치라고 볼 수 있지만 내치라고 볼수도 있다. 내치와 외치가 오버랩되는 분야가 많은 만큼 현실적으로 좀 어려울 것 같다.

▲어떻게 대통령 권한을 축소시킬 수 있나.

- 검찰총장, 국정원장 임명도 기관마다 인사추천위를 구성해서 독자적으로 조사하고 청문회를 거치고 이러면 대통령에 로비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겠나. 중립성과 객관성을 갖추면 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대통령의 인사권을 각 부나 기관에 나눠주면 힘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개헌을 할 것인가와 어떻게 개헌을 할 것인가, 크게 두 가지 과제가 있는 것 같다.

- 국민이 원하는 개헌이 돼야 한다. 각 정당 정파의 꼼수를 부리는 개헌을 해서는 통과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개헌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술수를 부리는 개헌이 통하지 않게 해야 한다. 요즘 차기 대선 후보별로 유·불리를 따지는데, 국가 백년대계라는 생각으로 이뤄나가야 한다.

▲탄핵이 헌법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켰다고 보나.

-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계기로 국민들이 헌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번이 두번째 탄핵이기 때문에 헌법 교육의 장으로서는 최고의 기회라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탄핵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식을 함양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고, 국가에는 불행하지만 국가 전체로는 헌법 교육의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헌법 교육을 제대로 해서 앞으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박 대통령도 탄핵 제도를 제대로 알았으면 이런 일을 저지르진 않았을 것이다. 이 기회에 국민들이 필수적으로 헌법을 공부하고, 헌법이 자기 권리를 지켜주는 수호천사라는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전체 국민 교육을 위한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헌법 교육을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 예를 들어 현재 9급 공무원 시험에 행정법만 있고 헌법이 없다. 공무원이 헌법을 제대로 알고 국민들의 권리를 제대로 알아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 않겠나. 특히 9급 공무원들은 실제로 가장 많은 국민을 만나게 된다. 시험 과목에 헌법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은 국민들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공무원들부터 헌법을 제대로 익혀서 다시는 탄핵과 같은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국민 전체가 헌법 전문가가 됐으면 좋겠다. 지금도 잘 하고 있지만 더 많은 국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헌법을 익혀 입헌주의, 법치주의 선진국가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이번 탄핵 정국에서 만들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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