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뉴스] ▲신새아 앵커= 의료사고가 분명한데 이를 입증할 수 없다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의료소송의 경우 전문가의 도움 없이 법적 다툼을 벌이기란 더욱 어려운 게 현실이죠.

국민의 정당하고 공정하게 재판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의료감정’ 제도가 도입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합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이혜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곽재헌(41)·서지현(가명·41) / 지환이 부모]
“본인이 혼자 병실에서 대소변까지 다 보고 혼자서 다 움직이고 하던 아이가 갑자기 심정지가 와서 죽은 거잖아요. 그러면 병원에서 뭔가 왜 이렇게...”

[이나금 / 고 권대희 씨 어머니]
“기각됐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눈물이 막 하염없이 나오는 게 내가 이거 ‘상고 기각’ 다섯 자도 안 되잖아요. 그 소리 들으려고 생업을 전폐하고 내가 정말 처절하게...”

의료사고로 소중한 자식을 하늘로 보낸 부모들.

부당한 죽음을 밝혀내겠다며 소송도 불사한 이들,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받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의료 과실을 밝히고 이것이 사고였음을 입증해야만 하는 게 대한민국 법체계 현주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의료분쟁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접수된 의료사고 손해배상소송 건수를 보면 2016년부터 꾸준히 950건 내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중 실제로 ‘원고 승’ 판결을 받은 경우는 0.6%에서 많게는 1.2%로 1% 안팎의 저조한 비율입니다.

이 같은 이유로 전문적 의료영역이 쟁점이 되는 싸움에서 공정함을 부여하고자 지난 2008년 의료감정 제도가 도입됐지만, 여러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우선 ‘의료감정 지연 및 거부’ 문제입니다.

피해자 측이 재판 중에 신체감정을 신청해도, 의료진 측에서 다양한 이유로 반려하거나 거부할 수 있습니다.

건설 분쟁, 언론중재, 소비자 피해구제 등과는 달리 의료중재의 경우 법적인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한변호사협회 의료인권소위원장을 역임한 신현호 변호사는 “의료기관이 감정을 거부하면 기다리다 못해 소송을 포기하는 일도 생긴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습니다.

[신현호 변호사 / 대한변협 의료인권소위원장]
“심정지 의료사고를 가지고 손해배상소송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결국 그 진료기록 감정이 한 3년 이상 공전되면서 입증을 포기를 하고 재판에서 기각당한 그런 사례도 있습니다.”

실제로 한 아이의 경우 수년이 지나도록 의료감정을 받지 못해 판결이 현재까지도 지연되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신체감정신청서를 제출하고 18번의 반려와 거부를 당했습니다.

두 번째로 의료감정서에 사실이 아닌 의견을 제시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힙니다.

감정은 사실 확인에 주안점을 둬야 하는데 의견 제시 쪽에 치우쳐 있다는 겁니다.

실제 진료기록 감정 답변서를 보면, ‘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 어려움’, ‘법적으로 잘못된 치료라고 말할 수 없음’ 등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신현호 변호사 / 대한변협 의료인권소위원장]
“감정은 사실 확인에 있습니다. 그런데 진료 지침도 제시하지 않고 ‘적절한 치료였음’, ‘의료 과실이라고 할 수 없음’, 더 나아가서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음’ 이렇게 그 판사가 해야 될 일을 감정인인 의사가...”

세 번째로는 의료소송은 입장의 비호환성을 가진다는 게 문제점으로 꼽힙니다.

건축소송이나 특허소송의 경우 언제든지 원고와 피고의 입장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소송은 의사가 환자 될 일 없고, 환자가 의사 될 일이 없어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신현호 변호사 / 대한변협 의료인권소위원장]
“삼성하고 애플하고 특허 싸움을 해도 누구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뀔 수가 있어요. 의료 감정은 입장이 비호환성을 갖는다는 특징을 가져요. 그러니까 의사가 환자 될 일 없고 환자가 의사 될 일이 없거든요. 초록은 동색이라고, 아무래도 좀 자기편을 드는 감정을 쓰는 게...”

이로 인해 법원을 향한 국민적 불신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에 신 변호사는 법원 역할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먼저 감정요청서를 보낼 때 ‘의료 행위가 과실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식의 주관적 평가를 요구하는 질문은 삭제하거나 수정해서 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의료사고 판례는 ‘살아있는 진료지침’이라 객관적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신현호 변호사 / 대한변협 의료인권소위원장]
“의료사고 판례는 살아있는 진료 지침이에요. 규범화 될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판단이 돼야 하는데, 감정 자체가 조금 잘못됐다면 판결도 잘못될 수밖에는 없거든요. 좀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감정이 사실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스탠드업]
의료감정 문제는 국민이 정당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도 있는 만큼, 모두가 함께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법률방송 이혜연입니다.

(영상취재: 안도윤 / 그래픽: 김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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