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사 최대 치욕'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소수의견'... 절대권력 굴종없는 소신 판결
노태우 전 대통령 '대법원장' 제의에 "사법부 독립 보장 전제 조건"... 사법 독립 기틀
김명수 대법원장, 이진성 헌재소장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이일규 전 대법원장" 꼽아

[앵커 멘트]

김명수 대법원장이 추도사를 통해 “우리 모두가 선생을, 대법원장을 자랑스러워 했다”는 이일규 전 대법원장.

현직 김명수 대법원장과 역시 현직인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모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가장 존경하는 법관으로 꼽은 이일규 전 대법원장.

사법부 개혁과 법관 내부 독립이 다시 화두가 된 지금, 장한지 기자가 이일규 전 대법장의 삶을 카드로 읽는 법조로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1974년, 국가 전복 기도 혐의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관계자 8명에 대해 1, 2심 군법회의가 사형을 선고합니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사형을 확정 판결합니다.

그리고 18시간 만에 집행된 사형. “대한민국 사법사 최대 치욕의 날”로 기록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입니다.

당시 13명의 대법관 중 12명의 대법관이 “사형” 판결을 내립니다.

그.러.나...

“재판 도중 공판조서가 변경되는 등 위법적 요인이 많다. 다시 재판해야 한다”며 홀로 유일하게 반대 소수 의견을 낸 단 한 명의 대법관이 있습니다.

“인혁당 사건 소수 의견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인혁당 사건 소수 의견을 보고 교과서에만 있는 줄 알았던 헌법 정신에 눈을 떴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의 인혁당 사건 소수 의견에 대한 존경의  발언입니다.

인혁당 사건에서 홀로 소수 의견을 냈던, 현직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공히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뽑은 단 한 명의 법관 바로 효암(曉庵) 이일규 전 대법원장입니다.

1920년 경남 통영 출생인 이일규 전 대법원장은 1948년 제2회 조선 변호사시험 합격해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원 판사로 법관의 길을 걷습니다.

1973년 대법원 판사로 임명 돼 1985년 정년퇴임 할 때까지 12년 8개월 간 대법관을 지내고, 1988년 제10대 대법원장에 취임 합니다.

1977년 서슬 퍼렇던 유신정권 긴급조치 시대, 고영근 목사가 설교 도중 “양주 30억원 어치를 수입했는데 유신 주역들이나 먹지 누가 먹느냐“ 라는 등의 발언을 합니다.

유신의 ‘ㅇ’만 언급해도 긴급조치 위반으로 잡혀가던 시절 고영근 목사는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으로 기소됩니다.

대법원 주심 이일규 대법원 판사는 이 사건에 대해 “사실을 왜곡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합니다.

1982년 3월 국가안전기획부는 “전 북괴 노동당 연락부 송창섭의 일가 친척이 25년 동안 고정간첩으로 암약했다“는 ‘송씨 일가 간첩 사건’ 을 터뜨립니다.

1·2심은 모두 유죄를 선고합니다.

대법원 주심 이일규 대법관은 그러나 “핵심 증거가 피의자 신문조서뿐이고 나머지는 정황 증거에 불과하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합니다.

그러나 전두환 군사정권의 서울고법은 다시 유죄를 선고하고, 재 상고심에서 이일규 대법관은 다시 무죄를 선고합니다.

두 차례에 걸친 ‘송씨 일가 간첩 사건’ 무죄 판결 이일규 대법관의 소신 판결은 계속됩니다.

1982년 재미교포 홍선길씨 간첩 사건 등 대법관 재직 12년 8개월 동안 시국·간첩 사건에서 10여 차례의 '소수의견'을 냅니다. 

당대의 절대 권력자 박정희의, 전두환의 눈치를 보지 않는 소신 판결.

그래서 얻은 별명, ‘통영 대꼬챙이’입니다.

1988년 제2차 사법 파동 와중에 다급해진 노태우 정부 청와대는 사태 수습을 위해 ‘통영 대꼬챙이’ 이일규 전 대법관에 대법원장을 제의합니다.

이일규 대법원장 후보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사법부 독립이 보장돼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대법관 후보자를 2배수로 제청하면 대통령이 낙점하던 관례를 깨고 대법원장 단수 제청을 확립하는 등 사법부 독립의 기틀을 놓습니다. 

“사법권의 독립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자 하는 헌법정신 실현은 오직 전체 법관 개개인의 양심과 용기, 지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1988년 이일규 전 대법원장이 취임사를 통해 남긴 말입니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오늘.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일규 전 대법원장 10주기 추도식에서 “좋은 재판을 통한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것만이 효암 선생님의 큰 뜻을 이어받는 길“이라며 이일규 전 대법원장의 유지를 계승하겠다는 뜻을 천명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 합니다.

우리 법원이 효암이라는 든든한 거목을 자양분 삼아 진정으로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법원이 되길 소원해 봅니다.

카드로 읽는 법조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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