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파산 결정 전 임금 체불은 근로기준법 위반 처벌... 파산 이후면 책임 못 물어"

[법률방송뉴스] 병원 원장이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직원들에게 무려 100억원대의 임금과 퇴직금을 체불했는데, 병원을 운영하던 의료재단은 결국 법원에서 파산 선고를 받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파산은 파산이고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원장에 대해선 근로기준법 위반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어떨까요.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부산에 있는 한 병원 원장 51살 정모씨라고 합니다.

상당한 규모의 병원으로 추정되는데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정씨는 직원들을 내보내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 직원 수백명의 100억원대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 지난 2016년 4월 기소됐습니다.

그런데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7년 7월 병원을 운영하던 의료재단은 부산지법에서 파산 결정을 받았고, 파산관재인으로 변호사가 선임됐습니다.

1심 법원은 지급하지 않은 임금과 퇴직금 전체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판단해 징역 1년 2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며 16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습니다.

재판부는 “정씨가 임금 및 퇴직금 지급을 위한 최선의 변제 노력을 했다거나 근로자 측과 성실한 협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같이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다만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 등 병원 경영이 매우 악화된 상태에서 원장에 취임한 정씨가 경영 정상화를 위해 나름 노력했다”며 징역형의 집행은 유예했습니다.

2심은 하지만 1심과 같이 혐의를 전부 유죄로 판단하면서 “정씨가 재직할 당시 퇴직한 근로자 수나 체불금품 액수가 상당하다”며 징역 1년 2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정씨가 병원장으로 취임한 직후인 2016년 9월부터 급여 미지급으로 직원들이 집중적으로 퇴직하고 의료진 부족으로 휴원에 이르렀는데 의료진 확보 등을 위해 노력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재판부가 밝힌 양형사유입니다.

정씨의 원장 취임 이후 임금이나 퇴직금 미지급이 집중 발생한 만큼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한다는 취지의 판결입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오늘(5일) 하지만 병원 파산 결정 이후 미지급된 임금과 퇴직금에 대해서까지 정씨에게 죄책을 물을 순 없다며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정씨는 파산 선고 결정과 동시에 임금, 퇴직금 등의 지급 권한을 상실했고, 그 지급 권한이 파산관재인에게 속하게 됐다”며 이같이 판시했습니다.

쉽게 말해 병원이 파산 결정을 받으면서 병원 재산권과 관련된 일체의 권리와 의무가 파산관재인에게 돌아간 만큼 파산 결정 이후 미지급된 임금 체불에 대해선 원장인 정씨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입니다.

“파산 선고 결정 후 지급 사유가 지난 부분에 대해서는 정씨에게 체불로 인한 죄책을 물을 수 없음에도 원심에서는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는 것이 대법원 판시입니다.

병원도 그렇고 일반 회사도 그렇고 이런 상황은 참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조직을 살리려면 조직원들의 희생 감수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그 적정한 선은 어디일까요.

직원들의 희생을 담보로 조직이 회생한다면 좋겠지만, 이번 사건처럼 끝내 병원이 문을 닫아 버리면 임금도 퇴직금도 받지 못한 직원들은 어디에다, 어떻게 하소연을 할 수 있을까요.

다만 어떤 경우라도 직원들 눈에 눈물 나게 하고 이리저리 자기 살 길을 찾아두고 고의로 파산하는 경우는 끝까지 밝혀내 엄하게 처벌해야 할 것 같습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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