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받은 양육비만 11년 동안 9,680만원
증거 제출에도 전 남편은 여전히 '무직' 주장

12일 오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김은진(44)씨가 양육비 이행 절차 간소화와 양육비 미지급자 엄중처벌을 요구하며 삭발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법률방송)
12일 오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김은진(44)씨가 양육비 이행 절차 간소화와 양육비 미지급자 엄중처벌을 요구하며 삭발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법률방송)

[법률방송뉴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살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11년째 홀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은진씨는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제도 개선을 촉구하며 지난 12일 국회 앞에서 삭발 시위를 감행했습니다.

첫째 아들은 16개월, 둘째 아들은 임신 중인 상태에서 전 남편과 이혼한 김씨.

어린 자녀들을 오롯이 김씨에게 맡긴 전 남편은 "돈이 없다"며 지난달까지 총 9,680만원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김씨는 아이들을 위해 힘든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2019년 이행명령 소송을 시작으로 감치명령 소송, 형사 고소까지 4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김씨의 몸과 마음은 지쳐갔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갈 때마다 주위 회원들과 양육자들의 울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고, 김씨의 양 볼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12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단체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과 양육자들이 양육비 이행절차 간소화와 양육비 미지급자 엄중처벌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법률방송)
12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단체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과 양육자들이 양육비 이행절차 간소화와 양육비 미지급자 엄중처벌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법률방송)

◆ 절차 간소화·미지급자 엄중 처벌 요구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은 지난 12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열고 '양육비 미지급자 엄중 처벌과 양육비 이행절차 간소화'를 촉구했습니다.

발언에 나선 김성범 법무법인 진성 실장은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한 피해 아동의 숫자는 100만명이 넘는다"며 양육비 미지급 실태를 꼬집었습니다.

그는 "양육비 미지급자를 형사처벌하려면 양육자가 평균 3~5년 내지 소송에 매달려야 한다"며 "생계와 양육의 이중고를 짊어진 양육자들이 이 시간 동안 소송에 매달리는 것"이라며 어려움을 전했습니다.

실제로 양육비 이행절차는 상당히 오랜 기간이 소요됩니다.

먼저 '양육비 이행명령 소송'을 하고 미이행 시 3개월이 지나면 '감치명령 소송'을 진행합니다.

이 감치명령 소송을 거쳐야 형사 고소가 가능하기 때문인데, 이것도 감치명령 후 1년 뒤에나 가능합니다.

적게는 3년에서 많게는 5년 정도의 시간을 소송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육아와 생계, 소송까지 모든 일을 함께 해야 하는 양육자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양육비 이행절차 간소화 법안이 현재 국회에 이미 발의돼 있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잠들어있다"며 "이 법안을 가능한 총선 전에 통과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촉구했습니다.

◆ 3건의 형사 재판... 모두 '집행유예'

2년 전 개정된 양육비 이행법은 감치명령을 결정 받고도 1년 안에 미지급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그러나 형사재판까지 가게 되더라도 실형이 선고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앞서 지난 9월 서울북부지방법원 양육비 미지급 관련 첫 형사재판 판결은 집행유예가 선고됐고, 지난달 수원과 대구지방법원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왔습니다.

몇 년간의 절차를 통해 형사재판까지 간 양육비 미지급 관련 판결이 3건 모두 집행유예로 결론난 것입니다.

12일 오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김은진(44)씨가 양육비 이행 절차 간소화와 양육비 미지급자 엄중처벌을 요구하며 삭발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법률방송)
12일 오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김은진(44)씨가 양육비 이행 절차 간소화와 양육비 미지급자 엄중처벌을 요구하며 삭발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법률방송)

◆ 아침에는 육아·시위... 야간에 근로

김은진씨는 자신의 삶을 "분 단위도 아닌, 초 단위로 돌아간다"고 표현했습니다.

김씨는 평소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공장에서 야간 근무를 합니다.

퇴근 후 아침에는 집에 돌아가 아이들의 등교 준비를 돕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법원·검찰청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진행합니다.

피켓 시위 후에는 다시 생계를 위해 일터로 향합니다.

김씨가 이 같은 생활 패턴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소송과 직장을 병행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김씨는 "(형사 재판이) 마지막 단계라는 간절한 생각에 일을 야간으로 돌렸다"며 "잠도 못 자고 쉼 없이 바쁜 일정이 고되기는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버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또 다른 40대 여성 양육자는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다"고 울부짖기도 했습니다.

그는 "18년 동안 전 남편이 지급한 양육비는 3,400만원"이라며 "나머지 6,500만원은 아직도 받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긴 시간 동안 소송에 매달리느라 현재 3가지 (비정규직) 직업을 갖고 있는 상태"라며 "법원 소송이 생길 때마다 직장에 양해를 구해야 했고, 소송 기간이 길어 (근무 시간이 고정적인) 정규직 직원으로 계속 일하기가 힘들었다"고 토로했습니다.

◆ 미지급자는 '모르쇠'... "판례 만들어야"

김은진씨는 다른 양육자들이 더이상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김씨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눈물을 흘렸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운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며 "전 남편이 일하고 있다는 증거를 여럿 확보해 제출했음에도 여전히 법정에서는 무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는 앞선 3개 사건이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제 사건에서) 판례를 만들어야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양육비 형사재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삭발 시위에 대해 아이들의 반응은 어떤지 물어보는 취재진에게 김씨는 "아이가 내년 1월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엄마가 머리카락이 없이 (졸업식에) 갈 텐데 괜찮냐고 물어봤더니 아이가 '저희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주신 것 안다. 오히려 자랑스럽다'며 털모자를 사주겠다고 하더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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