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法)이다] 'MZ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아우르는 청년층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친숙하고 변화에 유연하며 새롭고 이색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제법(法)이다'는 이런 MZ세대 청년변호사들의 시각으로 바라 본 법과 세상, 인생 이야기입니다. /편집자 주

 

이언 변호사 (전임 드루킹 특검 공판실장)

좋아하는 음식보다 싫어하는 음식을 먼저 물어보라는 소개팅 팁을 들은 적이 있다. 공통의 적을 찾는 이 행위는 서로가 공유하는 안전지대를 확인하는 절차다. 본격적인 교전에 앞서,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탐색에 가깝다. 

돌이켜 보면 맞는 말이다. ‘나도 그거 진짜 싫어’라는 대화가 환기하는 동지의식은 생각보다 선명하다. 무언가를 좋아할 때보다, 싫어할 때 발생하는 동력이 훨씬 강한 법. 적의야말로 호의의 가장 효율적인 연료인 셈이다. 사실, 대부분의 혁명은 선의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혐오에 의해 격발된다.

2021년의 대한민국에도 조용한 혁명이 진행중이다. 연합 대신 분리를, 연대가 아닌 배척을 목표한다는 점에서 이 서늘한 혁명은 기존의 그것들과 궤를 달리한다.

페미니즘 논쟁으로 남녀가 대립각을 세운 이후, 같은 성별 안에서도 꼰대, 틀딱론으로 기성세대와 2030이 갈라섰고, 최근에는 소위 설거지론을 필두로 20대 미혼과 30대 기혼 간에 긴장이 팽팽하다.

정계는 말할 것도 없다. 진보와 보수 모두 정책토론 따윈 팽개치고 오로지 상호 말살의 전면전에 돌입했다. 공약은 오로지 하나, 당선 후 확실하게 상대방을 짓밟겠다는 것뿐이다. 이쯤 되면 선거도, 정권 심판도, 그 무엇도 아니다. 비뚤어진 상호확증파괴의 장에 불과하다.

이런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한남과 한녀로만 존재한다. 진보와 보수는 서로의 대립항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이제 누군가를 설명할 때, 그의 선호보다는 그의 혐오에 기반하여 판단하는 것이 더 빠르고, 더 편하고, 어쩌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바야흐로, 혐오사회다.

회사든 조합이든 사단법인이든, 사람들의 모임은 어떤 지향을 공유한다. 민법에 따르면 ‘공동의 목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이 돈일 때도 있고, 정의구현일 때도 있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일 때도 있다. 어쨌든 사람들은 무언가 일정한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서로에게 인력을 부여해 왔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공유가 아닌 혐오에 의해 피아를 식별한다. 집단은 지향이 아닌 지양에 의해 결속된다. ‘적의 적은 친구’가 오늘날의 도원결의다. ‘우리’를 형성하는 원동력이 인력이 아니라 척력임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한남은 여혐, 한녀는 꼴페미. 기혼은 설거지, 미혼은 도태... 선명한 도식화는 사람들을 손쉽게 분류하고 명명하여 극성을 부여한다. 반대편 극단으로 상대방을 밀쳐내는 혐오의 자성(磁性)은 어떤 이성보다도 강하고, 영속적이다. 서로의 존재에 대한 반발력만이 한국 사회의 추진체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연료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 우리는 더이상 우리라는 말로 호명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를 구성하는 이 맹렬한 혐오들은, 방향성이라기보다 차라리 반응성에 가까운 것이므로. 항상 서로에 대해 새로운 극점을 발견해가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해체하여 더 작은 단위로 나누어갈 것이므로. 끝의 끝까지 서로를 몰아붙일 것이므로.

우리가 서로의 간격으로 환원될 때까지. 그 사이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마침내, 우리가 우리의 정족수에 이르지 못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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